이차전지 산업은 오늘날 에너지 산업과 첨단 제조업의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전기자동차, 에너지 저장장치(ESS), 스마트 디바이스 등 차세대 주요 산업의 기반이 되는 만큼, 각국은 자국 내 이차전지 생태계를 강화하려는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과 탄소중립 목표가 세계적으로 부상하면서, 이차전지는 단순한 부품 산업을 넘어, 미래 에너지 전환의 핵심 기술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 미국, 유럽연합(EU) 등은 국가 차원의 지원과 투자, 기술 개발을 통해 글로벌 기술 패권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 역시 이차전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세계 시장 점유율 상위권을 기록하는 글로벌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형적인 성과와 달리, 우리 산업은 몇 가지 구조적인 취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핵심 원자재의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고, 국내 수요 기반이 아직 미흡하다는 점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쟁력을 위협할 수 있는 요인이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직시하고 실질적인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1.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의 격화
먼저, 세계 주요 국가들이 이차전지 산업을 어떻게 육성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이 분야가 단순한 기업 간의 경쟁을 넘어서 국가 전략 차원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차전지는 전기차, 에너지 저장장치, 스마트 디바이스 등 첨단 산업의 필수 부품일 뿐만 아니라, 미래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 정책의 실현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주요 국가들은 이를 국가 안보와 기술 주권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1) 중국의 전방위적 전략
중국은 현재 세계 최대의 이차전지 생산국으로, 단순한 제조역량을 넘어 공급망 전반을 아우르는 전 주기적 통합 전략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적극적인 산업 정책과 대규모 보조금 지원을 통해 자국 기업들의 성장을 전폭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으며, CATL과 BYD 같은 대표적인 기업들은 이러한 정책의 수혜를 입어 빠른 속도로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배터리 제조에 필수적인 원자재인 리튬, 니켈, 코발트 등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시아 등 자원 부국들과의 전략적 제휴 및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 국영기업들은 현지 광산을 인수하거나 장기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원료 수급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글로벌 공급망의 주도권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중국은 내수 시장 역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합니다. 이는 전기차 및 배터리 제품에 대한 수요를 통해 자국 기업들이 기술을 빠르게 실증하고 개선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중국은 단순 조립을 넘어 기술력 내재화와 자체 브랜드 경쟁력 강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2) 미국의 기술 동맹 및 보호무역 전략
미국은 최근 몇 년간 제조업의 회복과 첨단 기술 분야의 자립화를 위해 강력한 보호무역 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정책으로는 2022년에 통과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있으며, 이 법은 미국 내에서 제조된 배터리 및 전기차에 대해서만 세액 공제 형태의 보조금을 제공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산 부품 및 원자재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 내 생산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입니다.
이러한 정책적 변화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기업들도 미국 현지에 합작 공장을 설립하거나 증설하는 등 공급망 재편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의 합작으로 미국 내 생산 시설을 확장하고 있으며, SK온은 포드와 협력하여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은 일본, 유럽연합, 한국 등과의 기술 동맹을 통해 중국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를 줄이고, 자유민주주의 진영 내에서 이차전지 생태계를 재편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경제 논리를 넘어 지정학적, 전략적 이해관계까지 고려한 종합적인 접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유럽연합의 공급망 다변화 및 기술 자립화
유럽연합(EU)은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한 산업 전환을 위해 ‘유럽 배터리 동맹(European Battery Alliance)’을 출범시키고, 역내에서의 배터리 생산능력 확대 및 기술 자립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간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해 온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자체적인 산업 생태계를 갖추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유럽의 전략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첫째는 기존 자동차 산업 중심의 기술과 인프라를 배터리 산업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입니다. 전통적으로 내연기관 차량의 강국이었던 독일, 프랑스 등은 전기차 전환 속도에 맞춰 자국 내 배터리 생산 거점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유럽의 자체 기술 기업 육성입니다. 대표적으로 노스볼트(Northvolt)는 스웨덴을 기반으로 한 배터리 스타트업으로, EU의 정책적 지원과 민간 투자 유치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중국 기업과의 기술 격차를 좁히기 위한 첨단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럽의 움직임은 단순한 산업 보호 차원을 넘어, 기후변화 대응과 산업 구조의 근본적인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원칙을 산업정책에 적극 반영함으로써,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배터리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2. 한국 이차전지 산업의 경쟁력과 구조적 한계
우리나라 이차전지 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매우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분야입니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주요 기업들은 고성능, 고에너지밀도 배터리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유수의 전기차 제조사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글로벌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들 한국 기업의 배터리는 미국의 GM, 포드, 테슬라를 비롯하여 유럽의 폭스바겐, BMW 등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에 채택되고 있으며, 이는 기술력, 신뢰성, 안정적인 품질 관리 시스템에 대한 국제적 인정을 의미합니다.
1) 축적된 기술력과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
한국 이차전지 기업들의 기술 경쟁력은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연구개발 역량과 철저한 품질 관리, 그리고 대규모 양산 체계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체전해질, 고에너지밀도 셀, 배터리 수명 연장 기술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도 상당한 진보를 이루었으며, 이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실용화 단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 기업들은 단순한 공급업체를 넘어서 기술 동맹과 공동 개발 파트너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협력 구조는 단순한 납품 관계를 넘어, 공동 연구개발, 현지 합작 공장 설립, 미래 기술 공동 기획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가치사슬 내에서 기술 선도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2) 원자재 해외 의존도의 위험성
그러나 이러한 경쟁력 이면에는 구조적인 취약점도 존재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원자재의 해외 의존도입니다. 이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리튬, 니켈, 코발트 등은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는 산업의 안정성 측면에서 상당한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리튬 자급률은 1% 미만으로, 사실상 전량을 칠레, 호주, 중국 등지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니켈과 코발트 역시 아프리카, 인도네시아 등 외부 공급처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국제 원자재 시장의 가격 급등, 수출 규제, 지정학적 리스크 등에 매우 취약한 구조를 의미하며,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일부 광물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의 수익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와 민간 기업은 자원 확보를 위한 해외 광산 투자, 장기 계약 체결, 재활용 기술 개발 등을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못한 실정입니다.
3) 내수 시장의 한계와 기술 실증 기반 부족
또 하나의 구조적인 한계는 국내 내수 시장의 협소함입니다. 이차전지는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전력망 보조 등 다양한 수요처를 통해 발전해 나가는 산업이지만, 한국은 인구 규모와 시장 규모 측면에서 미국, 중국 등 주요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전기차 시장의 경우, 중국은 자국 내 연간 수백만 대의 전기차가 판매되며 관련 인프라도 급속히 확장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보급률과 충전 인프라에서 제약이 많습니다. 이는 곧 자국 내에서 신기술을 실험하고, 상용화 이전 단계에서 충분한 실증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증 기반이 약하면 기술 개선 주기도 느려지고, 글로벌 시장의 요구에 빠르게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러한 한계는 한국 기업들이 보유한 기술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고도화하는 데 있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주도권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3. 대응 전략과 앞으로의 과제
이차전지 산업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가운데, 한국이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다 종합적이고 전략적인 대응이 요구됩니다. 현재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고 미래 산업 지형 속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정책과 산업 전략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1) 공급망 다변화 및 자원 외교의 강화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원자재 공급망의 안정화입니다. 현재 한국 이차전지 산업은 리튬, 니켈, 코발트 등 핵심 원자재의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이며, 이는 외부 변수에 따라 생산 안정성과 수익성이 크게 흔들릴 수 있는 취약한 구조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급망 다변화와 자원 외교는 필수적인 전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국내 기업들이 단순히 해외 광물 자원을 수입하는 것을 넘어, 광산 지분 투자나 직접 운영에 나서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실제로 일부 진척되고 있으며, 한국광해광업공사(KORES)는 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 전략 자원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민간 기업들도 KORES와 협력하여 자원 확보에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이는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는 물론, 자원 가격 협상력 강화라는 효과도 함께 기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외교적으로는 자원 부국과의 양자 또는 다자 협력을 통해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거나, 한국의 기술력과 자본을 제공하는 상생 모델을 통해 우호적인 자원 확보 환경을 조성하는 전략이 요구됩니다.
2) 내수 수요 생태계의 확장
기술 실증과 시장 선도를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내수 시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전기차 보급률과 ESS(에너지저장장치) 보급이 낮은 편이기 때문에, 이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정책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내수 기반이 강해질수록 신기술을 빠르게 검증하고, 시장 반응을 반영하여 제품을 개선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공공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전기차 및 배터리 기반 ESS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도록 유도하거나, 민간 부문에 대해서는 세제 혜택 및 보조금 확대를 통해 자발적 참여를 촉진하는 방안이 있습니다. 이와 함께, 사용 후 배터리를 재사용하거나 재활용하는 시장을 적극 육성함으로써 배터리 산업 전반의 생태계를 다층화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내수 시장의 양적 팽창을 넘어서,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3) 차세대 기술 확보와 중장기 전략 수립
마지막으로 기술 고도화 전략은 한국 이차전지 산업이 앞으로도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한 핵심 요소입니다. 단기적으로는 고성능 리튬이온 배터리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연구개발이 지속되어야 하며, 중장기적으로는 전고체 배터리, 리튬황 배터리, 나트륨 이온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기술에 대한 선제적 투자와 특허 확보가 중요합니다.
특히 전고체 배터리는 고에너지밀도와 안전성 측면에서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의 주류 기술로 각광받고 있으며, 이를 조기에 상용화하고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추는 기업이 시장의 주도권을 거머쥘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R&D 기금을 조성하고, 산학연 협력을 통해 기술 성숙도를 높이는 체계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와 함께, 단기적인 가격 경쟁에 치우치기보다는 기술의 질적 우위와 지속 가능성을 중심으로 산업 전략을 재편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단순한 제조기지를 넘어서 혁신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한국 이차전지 산업이 당면한 과제를 극복하고 미래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공급망의 전략적 다변화, 내수 생태계의 고도화, 차세대 기술 확보라는 세 축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종합적 전략이 필요하며, 이는 정부와 산업계, 학계가 긴밀하게 협력하여 실현해야 할 공동의 과제입니다.
우리나라 이차전지 산업은 높은 기술력과 글로벌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자재의 해외 의존과 내수 시장의 협소함이라는 구조적 약점도 동시에 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약점은 각국이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강화하고 기술 주권 확보에 나서는 흐름 속에서 더욱 부각될 수 있습니다.
현재 글로벌 경쟁은 기술뿐만 아니라 자원, 정책, 시장 전반을 아우르는 복합적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기술력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자원 확보, 내수 생태계 강화, 기술 실증 인프라 확충 등 구조적 과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수출 중심의 전략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부·산업계·연구기관이 긴밀히 협력하여 지속 가능한 산업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앞으로도 이차전지 강국으로 자리 잡는 핵심이 될 것입니다.